- 제목
- [연세대학교 대학원 소식 Vol. 5] 연세,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의 길 - 홍종일 연세대학교 연구처장
- 작성일
- 2026.08.14
- 작성자
- 일반대학원
- 게시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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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대학원 소식 Vol. 5] 전문가 기고문
연세,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의 길
홍종일 (연세대학교 연구처장)

1. 연구의 언어로 재현하는 연세의 이념과 비전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며,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여 인류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연구 중심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학생을 미래의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동시에, 학문적 발견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오늘날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피지컬 AI 등으로 대표되는 급격한 기술혁신은 인류의 삶과 문명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 윤리와 제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전통적인 단일 학문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글로벌 대학의 연구는 이제 단순히 논문과 특허를 생산하는 활동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학문 간 경계를 넘어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초학제적 체계로 전환되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그 성과가 기술혁신을 넘어 산업과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대학이 글로벌 연구 중심 대학으로 도약하는 노력은 대학 순위의 상승을 위함이 아니다. 진리와 자유라는 우리대학의 이념을 지식의 창출과 인재 양성, 사회적 기여의 순환적 구조로 이어지도록 연구의 언어와 체계로 구현하는 과정인 것이다.
2. 세계 연구 중심 대학의 변화
지난 20년, 세계 최상위 연구 중심 대학은 조용하지만 크게 세 가지 근본적인 재편을 거쳐 왔다. 첫째, 연구를 묶어내는 축이 개별 학문에서 시대적 화두로 옮겨가며, 학과 중심에서 주제 중심의 연구로 전환되고 있다. 둘째, 정부 연구비 의존에서 벗어나 산학 컨소시엄, 대학 지적재산의 사업화, 대형 기부 등 연구 재원이 다각화되고 있다. 셋째, 연구 성과의 지향점이 학술지 게재를 넘어 실질적인 사회적 파급과 확산으로 나아가고 있다. QS와 THE 등의 세계대학 랭킹은 변화를 뒤늦게 반영하는 지표에 불과하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변화들을 우리 조직에 이식하는 것이다.
3. 연세 연구체계의 현재 한계
연세대학교 연구 성과의 우수성은 세계 상위권 진입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 체계는 과거에 머물러 있어 글로벌 대학으로 전환하고 도약하는 데 구조적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첫째, 연구비 재원의 편중이다. 정부 R&D 과제 의존도가 높아 정부의 정책 방향과 투자 우선순위의 변화에 따라 예산이 좌우된다. 둘째, 현행 학과 단위의 인사 및 평가 체계는 이중 소속과 겸직을 행정적으로 제약하여 자유로운 학제 간 이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셋째, 논문 편수와 지수 중심의 성과 지표가 여전히 지배적이며, 연구 성과의 사회적 환원과 사업화는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넷째, 산학 공동 연구가 개별 과제와 자문 수준에 머물러 산발적이며 장기적 연구 체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 네 가지가 서로 맞물려, 우리는 아직 시대적 문제를 주도적으로 정의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대학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표를 갈고 다듬는 것이 아니라 연구 구조와 체계, 그 자체를 재정의해야 하는 이유다.
4. 두 개의 준거 — MIT Media Lab과 Stanford Doerr School
1985년 만들어진 MIT의 Media Lab은 ‘학제 간(inter-disciplinary)’이 아닌 ‘탈 학제(anti-disciplinary)’를 표방한다. 연구자는 학과가 아니라 문제(theme)로 자신을 정의한다. 산업계 회원제 컨소시엄을 주요한 재원과 협력 기반으로 운영하며, 회원 기업이 연구성과와 지식재산에 폭넓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연구자의 학문적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산업과의 대화를 상시화하는 것이다. 조직의 모토는 초기의 ‘Demo or Die’를 이어받아 이제는 ‘Deploy or Die’로 이어지는 실행지향의 정신을 표방해 오고 있다.
Stanford Doerr School of Sustainability는 스탠퍼드 대학이 70여 년 만에 2022년 신설한 단과대학으로, John Doerr 부부의 11억 달러 기부가 설립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 대학이 주목받는 이유는 학과가 학문적 깊이를 수직으로 파고들고, 수평으로 여러 학과를 엮어 하나의 문제로 통합하는 실행조직(Sustainability Accelerator)이 짝을 이루는 혁신적인 이중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난제는 하나의 학문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자연과학의 예측과 공학의 기술, 정책의 설계와 법의 규범이 하나의 해답으로 엮여야 비로소 실행될 수 있다. Accelerator는 바로 이 엮음을 상시 조직화한 실행조직이다. 조직 전체는 ‘기후, 에너지와 자원, 그리고 인간’이라는 단일 비전 아래 움직인다.
두 모델은 표면적으로 상반된다. Media Lab은 학과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탈학제 조직인 반면, Doerr School은 학과 위에 강한 미션을 얹은 이중구조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둘 다 자금 조달 방식, 의사결정 구조, 평가 방식에서 학문의 자유와 사회적 헌신을 조직 설계로 결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공유하며, 문제가 개별 연구보다 상위에 놓인다는 원리다. 재원의 축은 정부 과제 의존을 줄이고, 조직의 축은 학과의 벽을 낮춘다. 자유, 개척과 헌신이라는 연세의 언어와 정확히 공명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5. 연세의 차별화된 연구체계 구축을 위한 다섯 가지 제안
연세는 두 모델을 그대로 이식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종합대학으로서 인문사회, 자연과학, 공학과 의학이 한 캠퍼스에 있어 그야말로 미션 중심의 연구체계가 이상적으로 구축될 수 있다. 또한 국제캠퍼스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미래캠퍼스의 지역거점 연구중심이라는 두 날개를 가지고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으로 비상할 수 있다. 이러한 강점을 최대화하는 것이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나아가는 차별화 전략이 될 것이다. 새로운 연구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세부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기존 연구소를 미션-지향형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연구소를 새로운 목표에 따라 여러 학과 위에 놓이는 매트릭스형 조직으로 재설계하고, 실질적인 연구 수행주체로 활성화하는 것이다. 연구총괄자에게는 인사와 예산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임파워링이 우선되어 자율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미션별 산학 컨소시엄을 장려하여, 국내외 기업들이 연회비를 납부하고 지적재산권과 인재 접근권을 얻는 구조로, 정부연구비의 의존성에서 벗어난 장기적이며 독립적인 연구비를 확보한다.
셋째, 성과 구현 및 확산을 제도 내에서 인정해야 한다. 산학협력단과 기술지주회사를 연구소와 유기적으로 연결해 논문–특허–창업–사회적 구현의 파이프라인을 하나의 통합 체계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교수의 평가체계를 재설계하여 실사구시의 연구를 독려해야 한다. 승진과 평가에 융합 공동연구, 창업, 국제 공동 프로그램 지표를 신설하며, 유연한 겸직과 이중소속을 지원하는 것이다.
다섯째, 자매연구소(sister-lab/-institute)를 확보하는 것이다. 각 연구원은 국책연구기관 및 글로벌 연구기관과 자매연구소를 최소 1개 이상 구축함으로써 연구의 시너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6.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이러한 연구체계를 통해 다음과 같이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첫째, 재원 구조의 이중화다. 정부연구비의 의존에서 벗어난 장기적인 자율 연구비가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이를 통해 도전적이며 사회적 파급력이 높은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를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인적 자본의 국제화다. 지적자산의 사업화와 연구결과의 확산이 정당한 성과로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이를 통해 경쟁력 있는 국내 및 해외 신진 연구인력의 유치 경쟁력이 상승할 것이다. 셋째, 연세 연구의 사회적 파급효과의 가시화다. 산업체, 정부, 사회에 실제로 구현되는 연세 솔루션이 매년 수십 건 단위로 축적되어 대학 재정으로 순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넷째, 교육의 심화다. 학부와 대학원 학생이 실제 과제에 참여하여 문제를 정의하고 실행하는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미래 지도자 양성에 기여할 수 있다. 다섯째로 우리 대학의 글로벌 인지도와 신뢰도를 자연스럽게 높일 것이다. 이는 연세의 연구가 세계적 연구 네트워크로 더욱 확장되는 기반이 될 것이다.
7. 구성원께 드리는 제안 및 결언
이러한 체계는 대학 기관만의 노력이 아닌, 집단 지성과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은 결국 사람의 공동체이고, 혁신은 공동체 전체의 합의와 참여 없이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면을 빌려 세 그룹의 구성원께 각각 요청을 드린다.
먼저, 교수와 학생, 연구원께 요청한다. 학과의 경계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가시길, 자신이 정말로 풀고 싶은 문제에 대해 이질적인 동료를 찾으시길, 그리고 논문 이전에 프로토타입을, 프로토타입 이전에 사회적 구현을 상상해 주시길 요청한다. 안전한 논문 한 편이 아니라 사회에 실익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목표로 삼아주시길, 그리고 그 여정에서 필요한 자원과 네트워크를 학교와 소통해 주시길 요청한다. 직원과 행정부서께는 우리의 구조 조정을 가로막는 규정과 관행을 함께 재설계할 파트너가 되어 주시길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동문께 요청한다. 컨소시엄 회원사, 기부, 멘토십, 정책 자문의 형태로 모교의 연구 생태계에 적극 참여해 주시길, 그리고 여러분이 활동하는 산업과 사회의 현실 문제를 연세로 가져와 주시길 요청한다.
진리와 자유로 인류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연세의 비전을, 이제 연구의 언어로 재구성할 시간이다. 연세의 연구는 150년 후에도 믿음과 신뢰 아래 진리를 밝히고, 자유롭게 도전하고 개척하며, 세계를 향해 섬김과 헌신을 다할 것이다.
